오자기일기
적소 / 신현정 본문
나,
세한도 속으로 들어갔지 뭡니까
들어가서는 하늘 한복판에다
손 훠이훠이 저어
거기 점 찍혀 있는 갈필의
기러기들 날아가게 하고
그리고는 그리고는
눈와서 지붕 낮은 거 더 낮아진
저 먹 같은 집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아,
그만 품에 품고 간 청주 한 병을
내가 다 마셔버렸지 뭡니까
빈 술병은
바람 부는 한모퉁이에
똑바로 세워놓고
그리고는 그리고는
소나무 네 그루에 각각
추운 절 하고는
도로 나왔습니다만
이거야 참
또 결례했습니다
ㅡ신현정, 적소ㅡ
추사 김정희 - 세한도
새한도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으로 1974년 국보 180호로 지정됐다.
'세한도'(歲寒圖)라는 이름은 '추운 겨울이 된 뒤에나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논어의 구절에서 땄왔다.
겨울 추위 속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 있고 나무들 사이에 가난한 집 한 채가 놓여있다.
추사가 세한도를 그린 것은 1844년, 그의 나이 59세 때이다. 정쟁에 휘말려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된 지 4년이 되던 해다.
찾아주는 사람 없고, 육지 소식마저 접하기 어려운 절해고도의 추사에게 뜻밖의 커다란 소포가 날아든다.
중국 하우경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 총 120권, 79책이나 되는 거질의 책이다.
보낸 사람은 제자인 우선 이상적(1804~1865).
그는 한해 전에도 스승에게 '만학집'과 '대운산방집'이라는 문집을 보냈다.
이상적의 정성에 추사는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제자가 있다니'. 그리고 사제간의 감사하는 뜻으로 그림을 그려 보냈다.
歳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ㅡ논어
세상의 인심은 흐르는 물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만을 찾는데
그대는 이처럼 마음과 힘을 써서
구한 책들을 권세있는 자들에게갖다주지 않고,
오히려 바다 건너 귀양살이하고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 주었구려 ...
공자께서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 있음을 안다고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