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길 / 박영근 본문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ㅡ박영근, 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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