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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의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이 떨어져 죽을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개 한개가 낱낱이 날려 산화(散華) 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나가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선암산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
바틀비 이야기 [ Bartleby the Scrivener ] 미국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멜빌의 첫 번째 잡지 기고 소설. 미국의 금융 중심지 뉴욕 월가를 배경으로 산업화, 도시화된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주의를 비판한 수작이다. 뉴욕 월가의 한 법률 사무소가 낸 필경사 구인광고를 보고 ..
[낮은 목소리로]겨울, 강철로 된 무지개 김별아 소설가 온 나라가 은화(銀花)로 뒤덮이고 며칠 지나 경북 안동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도산면 토계리 퇴계 종택에서 자동차로 10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한 이육사 문학관에서 열린 낭독회에 초대받은 터였다. 문학관은 큰길에서도 한참..
나는 이방인을 두 파트로 나눠서 해석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살인을 저지르는 일련의 과정이고 둘째는 그 후 재판 과정에서 일어나는 얘기... 첫째 파트는 둘째 파트를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정당방우가 아닌 그저 칼에 비친 태양빛에 자극 받아서 총을 땡깃다는 설정은 그 행..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
... 아버지의 유전자는 전적으로 조선 왕조의 유전자였다. 농경 공동체 문화, 가부장적 문화, 남성 중심적 문화를 그대로 전수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지막 아버지였다. 물려받은 대로, 물려줄 수 있었던 아버지. 그러고 보니, 나는 마지막 아들이자, 최초의 아버지다. 나는 마지막 아버..
저의 시에서는 자연을 찬양하거나 사랑한다고 하는 시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시에 쓰기를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건 곧 시가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이거죠. 그러나 이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시는 매우 지적으로 태만하고 나태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