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문인수, 보리ㅡ 본문
어느 아파트에 갔다가
그 노인을 보았습니다
팔순도 넘었다는 할아버지였는데,
두어 해 전부터 치매를
앓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가동과 나동 사이
아스팔트 마당을 골똘하게
걷고 있었습니다
고개 숙이고
무릎 굽히고
뒷짐 지고 하염없는 왕복 계속하였습니다.
발끝에 힘을 주는 듯
잘근잘근 밟아나갔습니다 밟아나갔습니다
밟아나갔습니다
아...
보리밟기였습니다
마침내
저 힘센 보리가 무수히,
겨울 지난 보릿골이
꿈틀꿈틀 일어나더니
꿈틀꿈틀 길게 이어졌습니다
유월 참 좋은 바람,
그런 풀비린내의 초록의 길을 고집불통의 한 사내가
오래가고 있었습니다
ㅡ문인수, 보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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