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백난작, 금화규ㅡ 본문
지루한 장마가 지나가더니
빚쟁이처럼 폭염이 찾아온다
세상에 진 빚이 많아 더위가 유독 나만 쫓아다니는지
심한 감기에 발열하듯 연일 몸이 끓어올라 끼니를 챙기는것도 귀찮아 진다
봄에 시설에서 꽃이 이쁘다고 키워보라고 하길래
화분에 심어 놓은 어린 풀포기 몇 개를 가져다 집앞 발코니 앞에다 심었더니
장마가 끝나자 연노랑의 꽃잎을 내놓는데,
나뭇꾼의 선녀가 벗어 놓은 잠자리 날개같은 옷깃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이
여간 사람의 애간강을 흔들어 놓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이름을 알았는데 금화규라고 했다
열병에 걸린 몸을 간신히 붙들고 퇴근하면 금화규 보는 맛에 잠시 더위를 내려놓기도 했다
그런데 금화규는 꽃을 쳐다보는 재미도 있지만
꽃을 따서 말려서 꽃차로 먹으면
피로회복에도 좋고 자체로 식물성콜라겐의 보고라 할 만큼 콜라겐이 많아
말린 꽃이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는데
보는것이 좋은지 따서 말려서 먹는것이 나을지 고민스러워 졌다
금화규의 꽃은 하루만 피었다가 지는데
꽃의 최후는 절정의 시절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고결하기까지 하다
해가지면 꽃잎 가장자리가 조개가 입을 닫는것 처럼 서로 잎을 맞대고 한 덩어리가 된다
다른 꽃들은 대부분 꽃이 질때는 햇볕에 모든 수분을 뺏기고 탈진상대로 백짓장처럼 바람에 흩날리는데
금화규는 서로 솜처럼 돌돌 말려서 수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줄기 바로 밑에 툭 떨어져서
진한 갈색으로 말라가는 것이, 죽어서도 뿌리에 수분을 줄려는 烈士(열사)의 기풍이 느껴지기도 한다
보통 7월에서 8월까지 한 가지에서 수십여개의 꽃망울들이 계속 맺히고 꾳피우고 떨어진다
한 작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은 2개월 남짓 그렇게 짧은 여름날들에 걸쳐 이루어 진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사람들의 빅밴의 시간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2개월,20년, 200년이든 생성과 소멸의 과정은 유적 구분에 상관없이 유사한 면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모든 것들은 꽃잎처럼 떨어지지만
삶은 그 과정에 씨앗을 만들어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위대한 여정인 것을
꽃에 기대어 깨닫게 된다
양념반 후라이드반은 선택의 번거러움으로부터 약간의 자유를 준다
반은 시각의 양식이요,
반은 미각의 양식으로 하면 좋겠다
꽃잎의 반을 따다 풍장을 하고
드는 햇볕아래서 꽃의 추억을 기리고
가슴에 묻어 두었다가
훗날 먼 곳을 날아와 이곳에 머무는 사람에게
황금 해바라기, 금화규의 지난 여름날의 이야기를
따끈한 찻잔에 우려내 들려주고 싶다
밤새 그 꽃차의 향에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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