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장마, 백난작 ㅡ 본문
물로 세상을 심판한 신은
물을 사랑하여
물로써 자신을 증거하게 하고
나는 긴 장마의
엄습함과 푸근함과
그 아득한 물의 기억을 사랑하여
장마를 기다렸다
비를 맞으며
잎들은 푸르게 넓어지고
비를 맞으며
눈과 귀를 씻고
한결 묽어진 피로
너를 쫓아 흐르고 싶었다
쏱아지는 빗속으로
생각 한 꾸러미 툭 던져 놓았다
바닥에 부숴진 물들이 피어오른다
부숴진 가벼움은 세상을 가볍게 지워간다
문득 산 하나가 없어진다
고요히 지우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의 자태가 의연하다
지붕을 두드리는
서러운 초혼(招魂)의 소리마저
하얀 구름에 실려 사라진다
참 아름다운 망각이다
참 고마운 장마다
ㅡ 장마, 백난작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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