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구멍의 고백 본문
내 안에 구멍을 파는 자가 있다
행복한 세상으로 가자
‘행복한 세상’에서 찾고 찾은
싸구려 행복은 거절당했다
구멍은 구멍을 넓혀가고 있다
해 아래 새것들이 넘쳐난다
눈 뜨면 새 기호들이 구멍 내는 세상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지배하기 위해
다른 구멍의 구멍을 욕망한다
떠내려간다
내 발로 끝까지 걸을 수 없다
좁은 바지통에서 넓은 바지통으로
해체시에서 회귀하는 서정시로
설왕설래하는 독을 앓는다
구름악기로 신성을 노래해도
둥치에 핀 벚꽃 웃음을 건네도
구멍은 다른 구멍을 욕망할 뿐이다
캄캄 밤이 두른 신음밖에는
비 맞아 녹슨 꿈밖에는
사랑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밖에는
구멍은 구멍을 고백하지 않는다
ㅡ정영선, 구멍의 고백ㅡ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르마콘 (0) | 2021.11.11 |
---|---|
가을 안부 (0) | 2021.11.09 |
삼천포에 가면 (0) | 2021.11.03 |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박노해 ㅡ (0) | 2021.10.31 |
나무도마를 만들다, 김영희ㅡ (0) | 2021.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