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가을 안부 본문

가을 안부

난자기 2021. 11. 9. 00:39

비가 내려
며칠 동안 씻지 않은 얼굴이 말끔해졌다
길게 자란 수염을 자르고 싶지만
조금 더 게을러져도 좋은 계절이다
하늘도 바람도 모두 투명해지는 시간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덮어놓은
연애소설의 중간쯤이나 될까
지난여름의 화염을
조금만 더 그리워해도 좋은 계절이다, 라고 생각한다
후드득 떨어지는 것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몇 점 눈송이가 데리고 올
겨울을 떠올리며
첫눈 온다고 주고받을 안부를
미리 연습한다

미안하다 그대를 잊어서
미안하다 그대를 잊지 못해서

애써 밑줄을 긋지 않아도
평생 기억하는 문장이 있다

 

ㅡ이종형, 가을 안부ㅡ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산에 걸린 달  (0) 2021.11.12
파르마콘  (0) 2021.11.11
구멍의 고백  (0) 2021.11.05
삼천포에 가면  (0) 2021.11.03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박노해 ㅡ  (0) 202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