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똥 / 최승호 본문
변기의 구조는
크게 나누어보자면
똥을 담는 그릇과
똥을 빼내는
구멍으로 되어 있다
요강은 그렇지 않다
요강의 똥은 빠져나갈 곳이 없으므로 쏟아버려야 한다
그런가 하면
똥통은
요강보다 훨씬 깊다
그걸 퍼내려면
긴 막대기 끝에
똥바가지를 매달아야 한다
제대로 된 똥은
천천히 꿈틀대면서
변기 물 속으로 떨어진다
똥!
이보다 더
우주적인 말이 있을까
항문 괄약근은 뱃속 찌꺼기들을 내보낸다
빅뱅!
오므렸다 펴고
오므렸다 펴는 空의 대설사
태초에 내보내야 할
엄청난 찌꺼기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한꺼번에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먼지들의 離合集散
똥, 離合 속의 삶
똥, 集散 속의 죽음
창자에서 똥을 빼내고
돼지 아닌 것들로
빈 창자를 가득 채워
삶은 것이 순대다
비 오는 날
순대광주리 옆에서
헤벌쭉 웃는 돼지머리,
그 돼지이빨 틈에
지폐를 끼워넣고
우리는
길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ㅡ최승호, 똥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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