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수산시장에서 / 윤중호 본문
오랜 행상으로,
팔과 다리에 신경통이,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엄니가
몸살을 앓으신다길래
영광굴비나 한 두름 사드릴까 하고
수산시장을 기웃거리다가
“아줌니 이거 어떻게 해요.”
주머니 돈을 꾸깃거리며 묻는 내게
“맛은 참 좋은디 비싸서……”
내 꼴이 꼴뵀던지
졸다 깬 눈을 다시 감으시는
아줌니의 피곤한 꿈 너머로
영광굴비 대신으로
굴비보다 더 싸게 엮여 들어간
친구 놈의 허연 얼굴이,
대롱대롱 바람에 흔들리고
불쌍하기는, 담장 밖에 갇힌
사람이 더 불쌍하지만
면회랍시고
책 한 권 밀어넣어주고
말을 잃고 있는 내게,
연애하라고 비죽이 웃던……
“총각 어떻게 할겨, 살껴?”
“.........”
그럼요, 살아야지요
살아봐야지요
소주잔에 놈의 얼굴이 비치고, 거짓말처럼
황사바람이 불어오고......
ㅡ윤중호, 수산시장에서ㅡ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상 / 최영규 (0) | 2019.08.22 |
---|---|
우리가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은 / 신경림 (0) | 2019.08.16 |
부랑자의 노래 / 최하림 (0) | 2019.08.14 |
병력 / 임보 (0) | 2019.08.13 |
초여름에 들 때 / 남지연 (0) | 2019.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