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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너, 거기 피어 있었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봄바람은 내 작은 꽃 속에서 불고, 가난해도 꽃을 피우는 마음 너 아니면 누가 또 보여주겠느냐 이 세상천지 어느 마음이 ㅡ김형영, 변산바람꽃ㅡ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ㅡ함민복, 그 샘ㅡ
여보세요 나예요 내 모습이 여간 이쁘지 않나요 이쁘다고 말해주세요 기분나쁜 일이 있어도 나를 보고 이쁘다고 말해주세요 나의 사연에 대해 말하자면 길어요 당신의 일과 비슷하니까 생략하께요 대신 빛이 머무는 것과 같이 시선을 내게 묻어보세요 당신에게 웃고있는 내가 보이나요 나는 빛의 마술사, 붉은 스커트를 입고 보라색 입술로 춤추는 신데렐라 자정까지만 볼 수 있지요 장미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유혹하는 시간은 빅밴의 시간 나머지는 시간밖의 시간 나는 영원히 지지않는 불멸의 옷을 입고 시간밖에서 당신을 보며 웃고 있을 거예요 나는 빛의 마술사, 당신은 나의 수 많은 애인들 중 하나 당신의 변치않는 사랑을 치하합니다 투정하지 마세요 모든 애인에게 똑같이 키스해 주니까요 - 장미정원, 백난작 -
갓 지었을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 구나 ㅡ이재무, 밥알ㅡ
더 잃을 것이 없어지느라 배도 몇 번 째본 내가 기고만장해서 여기가 바닥인가 중얼거리면 예, 거기가 바닥입니다 누가 발밑에서 답한다 내 무덤 아래에 늘 다른 무덤이 있다 ㅡ이영광, 바닥ㅡ
우리 어머니 눈 감기 사흘 전에 곡기 딱 끊으셨다 몸부터 깨끗이 비워낸 뒤 평생의 외로움과 일체의 미움 버리고 비로소 깊은 단잠에 드셨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평온한 얼굴로 ㅡ고증식, 아름다운 잠
막걸리 몇 잔에 툭 불거진 배를 내놓고 청솔 그늘에 누우니 自足이 청개구리 배통만 하다 바람도 물과 같거니 물도 바람 같거니 청개구리야 청개구리야 네가 울어도 그만 안 울어도 그만 ㅡ강우식, 청개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