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떨어지는 해가 잠시 멈출 때, 전동균ㅡ 본문
썰물의 드넓은 뻘
휘어진 물길을 타고
흘러나오는 핏덩어리들
핏덩어리 같은 숨소리들
우리는 먼 곳에서 왔고
오늘밤엔 더 먼 곳으로
가야하지만
뻘 위의 널 자국,
파헤쳐진 검은 흙들에게
새꼬막, 낙지, 짱뚱어,
같은 것들에게
용서를 빌듯 서 있어요
급히 달려가다
쓱 한번 뒤돌아보는,
입을 앙 다문 바람 속에
철새들 자욱이 날아오르고
울음도 없이 사라지고
풍랑과 제사를 기억하며
흩어지는 집들
끊임없이 삐걱대는 문들
어딘가요?
무너지는 갈대밭 속인가요?
뻘을 바라보는
당신 눈 속인가요?
모닥불 타는 연기가 나요
추운 혼들 부르는
그 냄새를 맡으면
아, 거짓말을
거짓말 같은 고백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와
기쁘다고
계속 아프겠다고
ㅡ전동균, 떨어지는 해가 잠시 멈출 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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