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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의 고백 본문

구멍의 고백

난자기 2021. 11. 5. 17:55

내 안에 구멍을 파는 자가 있다

행복한 세상으로 가자
‘행복한 세상’에서 찾고 찾은
싸구려 행복은 거절당했다
구멍은 구멍을 넓혀가고 있다

해 아래 새것들이 넘쳐난다
눈 뜨면 새 기호들이 구멍 내는 세상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지배하기 위해
다른 구멍의 구멍을 욕망한다
떠내려간다
내 발로 끝까지 걸을 수 없다
좁은 바지통에서 넓은 바지통으로
해체시에서 회귀하는 서정시로
설왕설래하는 독을 앓는다

구름악기로 신성을 노래해도
둥치에 핀 벚꽃 웃음을 건네도
구멍은 다른 구멍을 욕망할 뿐이다

캄캄 밤이 두른 신음밖에는
비 맞아 녹슨 꿈밖에는
사랑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밖에는
구멍은 구멍을 고백하지 않는다

 

ㅡ정영선, 구멍의 고백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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