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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작

고양이 네로 / 백난작

난자기 2022. 1. 7. 22:30

 

 

해질 무렵

축사에는 저녁 만찬소리 부산스럽다
우리옆 한켠에 화덕난로가 있고 

장작더미가 쌓여 있다
그 중 한 나무등걸에 검은고양이 엎드려
몽상에 잠겨 있다

 

주인은 너를 네로라 불렀다 

 

너는 눈을 감고 너를 보고 있고
나는 눈을 뜨고 너를 보고 있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 짪은 순간
서로의 세계가 충돌한다

너의 우주에서는
누가 고양이방울을 매고 있는지
누가 구운 생선을 훔쳐 먹고 있는지
누가 부뚜막을 먼저 올라갔는지 알고 싶다

 

소는 남은 사료 한 알까지  핥으며

생각을 지운다
오로지 먹이와 새끼로 이루어진 세계에는

사치는 없다
너와 소의 우주는 충돌하지 않고 
자기속도로 일정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네로야, 이리와 바" 
억지스럽게라도 약간의 의미를 가져보려는 의도에서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이런 행동으로
이를테면 소나무와 느티나무의 차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 차이로 너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혹은 너가 나에게 온다면

무슨 의미가 생겨나지 않을까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또 다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니까

너를 키높이까지 들어올렸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너가

거꾸로 떨어질까 바로 떨어질까 궁금했다
허공에서 다리를 휘저으며

가볍게 바닥으로 떨어졌고 머리를 곧추세우고는

경멸의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의 고루한 확인본능은 언제나  분노를 유발했다
고양이를 함부로 던지는 일은

실로 오만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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