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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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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밥통과 같다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부엌에서 가장 어리석고 아둔한 음운을 가진 부속 사랑이 그렇게 둔탁한 발성과 모서리 없는 몸을 가졌다는 걸 일찍이 알지 못했네 오래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을 때 속이 비쩍 다 마르도록 전원을 끄지 않고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너의 이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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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회사에서 물먹었고요 엄마는 홈쇼핑에서 물먹었데요 누나는 시험에서 물먹었다나요 하나같이 기분이 엉망이라면서요 말시키지 말고 숙제나 하래요 근데요 저는요 맨날맨날 물먹어도요 씩씩하고 용감하게 쑥쑥 잘 커요
목포에 가면 흑산도산 홍어를 먹을 수 있지 묵은 김장 김치 한 장 넓게 펴서 푹 삶은 돼지고기에다가 거름에 삭힌 홍어 한 점 얹혀 한입 크게 삼켜 소가 여물을 먹듯 우적우적 씹다보면 생활에 막힌 코가 뻥, 뚫리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다네 빈 속 싸하게 저릿저릿 적셔가며 주거니 받거니 탁배기 한 순배 돌리다 보면 절로 입에서 남도창 한 자락 흘러나와 앉은 자리 흥을 더욱 돋기도 하지만 까닭 없이 목은 꽉 메면서 매캐한 설움 굴뚝 빠져나온 연기처럼 폴폴 새어나와 콧잔등 얼큰, 시큰하게도 하지 사투리가 구성진 늙은 여자 허리를 끼고 소갈머리 없는 기둥서방으로 퍼질러 앉아 잠시 잠깐 그렇게 세월을 잊고 농익은 관능 삼키다보면 시뻘겧게 독 오른 생의 모가지쯤이야 한숨 죽여 삭힐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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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 천천히 걸어나오는 저물녘 도서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애써 밑줄도 쳐보지만 대출 받은 책처럼 정해진 기한까지 성실히 읽고 깨끗이 반납한 뒤 조용히 돌아서는 일이 삶과 다름없음을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 혼자 걸어 들어갔었는데 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 않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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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물었을걸! 생물은 그중 사람은 무얼 먹고 자라나? 뭐 그런 투로 말이야 두려움을 지그시 씹어 삼키던 목젖의 통증으로 세상의 복판에 설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솔직히 어젯밤 내내 나도 두려웠다, 얘야! 다만 하루를 훤칠하게 시작하려고 행복을 응시하며 누르는 셔터처럼 쳐들어올 두려움의 물결을 똑바로 쳐다보며 건너는 거겠지 두려움의 기세만큼 정신의 뼈가 자라줄까 정신이 자라야 저를 지키지? 그렇지? 어둠의 다른 얼굴이 빛이라면 누가 세상의 모든 기억들을 움직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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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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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자마자 흔들의자부터 사야지 언제든 앉으면 저절로 몸이 흔들리는 의자 달개비 같이 서러워도 한순간 심연처럼 깊어지는 의자 거미줄처럼 복잡해도 단박에 고요해지는 거야 쿠바는 흔들의자였다 집집마다 계단 같은 흔들의자가 있다 열 개씩 가진 자, 그 뒷길 칠 벗겨진 가난한 문가에도 두개씩은 놓였다 튼튼한 것도 있고 삐걱이는 것도 있지만 모든 틈들이 거기 앉아 흔들거렸다 부러웠다 의자에서 춤과 노래 흔들흔들 자랐구나 의자 가득 하느님들이 술렁이는구나 하느님은 춤을 추는 자, 흔들의자는 야릇한 신을 기르는 구나 한 번도 제대로 흔들리지 못했다 바다를 입은 파도처럼 산그늘 입은 후박나무처럼 흔들, 흔들거리자 죽음도 삶도 모두 춤이어야 하니 죽은 자도 산 자도 출렁이는 바람이어야 하니 십년을 돌고 돌면서 아직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