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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있는데 갈 길이 끊꼈다. 기차를 탄다. 기차는 길 위를 달린다. 아니,길이 달린다. 잠시 달팽이의 삶에 대해 고민할려다 몰려드는 피로가 고민을 익사시켜 버린다. 숨을 고르고 달리는 길위에 다시얹혀진다. 수많은 글들이 지나간다. 뜻은 하나도 없다.없는 내용만 ..
나 잡목 우거진 고랭지 이 여름, 깊은 가뭄으로 흠뻑 말라 있으니 와서, 어서들 화전하여라 나의 후회들 화력 좋을 터 내 부끄러움들 오래 불에 탈 터 나의 그 많던 그 희망들 기름진 재가 될 터 와서, 장구 북 꽹과리 징 치며 불, 불 질러라, 불질러 한 몇 년 살아라 한때 나의 모든 사랑, 화..
“우리들의 잡은 손 안에 어둠이 들어차 있다” 어느 일본 시인의 시에서 읽은 말을, 너는 들려주었다 해안선을 따라서 해변이 타오르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걸 보며 걸었고 두 손을 잡은 채로 그랬다 멋진 말이지? 너는 물었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대답을 하게 되고 해안선에는 끝이 없어서 해변은 끝이 없게 타올랐다 우리는 얼마나 걸었는지 이미 잊은 채였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면 슬픈 것이 생각나는 날이 계속되었다 타오르는 해변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타오르는 해변이 슬프다는 생각으로 변해가는 풍경, 우리들의 잡은 손 안에는 어둠이 들어차 있었는데, 여전히 우리는 걷고 있었다 ㅡ황인찬, 기념사진ㅡ [작당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느끼는 감동과 슬픔의 감정은 왜 닮아 있는가 [난자기] 음ᆢ미의 극단에는 애가 있는가?..
나는 걷고 있다. 나는 합정에서 망원 쪽으로 걷고 있다. 나는 걸으면서 본다. 나는 걸으며 사람들과 자동차들과 건물들과 불빛을 본다. 나는 바람을 본다. 나는 기억을 본다. 나는 나를 보고 너를 본다. 너는 멀리 있다. 너는 언제나 떨어져 있다. 나는 걷고 있었다. 나는 앉아 있다. 나는 앉..
나무 사잇길이 밝게 부르는 것 같다 흐르는 마음이 닦아서 편편해지는 게 길의 힘이어서 산비탈도 길로 내려서면 나른해진다 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집에서 나와 가출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오후,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기척에도 귀 기울이며 사람들은 제 설렘들을 몰래 그 길에 내어 ..
바람이 만들어지는 때 그 바람에 마른 문장이 서리와 서리처럼 비벼지는 때 불을 놓고 싶다 굽고 익히고 끓이고 덥힌 불로 하여금 긴히 다시 사는 법을 알고만 싶어서 새가 바람을 공부하지 않고 어찌 날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저녁을 먹지 않으려는 저녁에 누군가 마중을 나온다는 말..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낙타의 눈은 사막의 달 달력의 스프링처럼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어제로 이어지는 혼돈의 찌꺼기 바람이 수습하지 못하는 생의 이력서 시간의 혹을 등에 진 낙타 한 마리 허름한 담벼락에 기댄 채 모래밭에 오아시스를 구겨 넣고 있다 ㅡ박우담, 혹ㅡ 혹...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