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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네 머리속에 무엇이 기어 다니는 거니? 많이 아픈 거니? 늑대처럼 짖지마 나도 아파 쓰레기를 가득 안고 살지 비워도 비워도 다시 차오르는 찌거기가 주인인양 온 몸을 돌고 있어 내안에 사는 다른 내가 나를 기둥에 꽁꽁 묶어 두었어 어떤 나를 원하는 거지 나도 내가 낮설기만 해 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거 알아 나에게 너도 마찬가지야 우린 너무 꽉 차 있어서 서로를 붙들 수 없어 바람이라도 되어 볼까 늘 빈 곳을 찾는 이방인의 푸른 눈빛 같은 바람 마음 한 구석을 비워주면 나의 이방인이 되어 주겠니 그러면 나도 너의 타인이 될 수 있을런지 몰라 네 머리속에 무엇이 기어 다니는 거니? 많이 아픈 거니? 늑대처럼 짖지마 나도 아파 우리는 늦은 항문기를 지나는 중이야
그 섬에는 구멍이 숭숭 난 돌과 그 돌로 쌓아 올린 구멍이 숭숭 뚫린 담벼락과 구멍이 숭숭 난 해녀의 가슴이 떠 다니는 바다가 있다 오랜 세월 화(火)를 삭히고 삭혀 겨우 추스려낸 한 숨에 섬은 깨어나고 그 곳에 바람과 돌과 여자가 깃들었다 텅 비워내지 못했다면 이루지 못했을 활화산의 꿈 오직 비움으로 담벼락은 모진 바람을 견디어 바위가 되었고 여자는 거센 바다가 되었다 쇠소의 끝으로 버려지는 것들의 흔적이 너절하다 바위를 할퀴고 땅을 두드리며 지나간 자리 테우 한 척 채 비우지 못한 생각을 싣고 땅끝으로 매달려 있다
"당신을 이해해요"라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는 오만에서 나온다 오래된 철학적 논쟁이기도 하지만 존재는 자신의 주관적 사고의 틀에 의해 세계를 인식할 뿐 세계는 존재에 의해 구성된 피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타자가 존재한는다는 것을 증명하는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하물며 타자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은 넌세스다 다만 상대방의 의중을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유추할 뿐이다 "그 사람 참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이 오히려 당연하다 다른 사람을 섣불리 이해하려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상이며 박물관에 코기리를 몰아 넣는일이다 "이해 "대신 "인정"을 하는 것이 어떨까? 들판에 핀 꽃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동을 받는이 있고 그저 그런 느낌을 받는 이도 있고 느끼지 ..
지는 살구꽃 바라보는것 말고 별의 별 색깔을 가진 망상도 좋은데 벌에 쏘인것처럼 팅팅 붓고 따기따기해서 잠시라도 딴 생각이 들지 않을 싸다구 한 대 얻어 맞고 싶은 봄날이다
노랑과 초록이 엮어낸 눈 먼 에로스 지난 가을의 언약이 빛으로 빚어지는 연두는 봄의 처음 몸짓이다 반쯤 죽은 버드나무에 느티나무 텅빈 가지 위에 빛이 번진다 한 통의 기쁜 편지를 받고 몇 날을 설레었던 추억 이 무렵 봄날은 먼곳에서 불쑥 찾아온 아득한 사랑같아서 심장이 뛴다 연두, 그리고 초록, 그리고 낙엽.. 이 질긴 순환의 사슬 봄이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편지 한 통 연두는 곱게 접어진 편지지를 꼭 안고 초록으로 잠든다
목이 따끔거리더니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녀석이 들어왔음을 느꼈다 나와 공존할수 없는 존재 둘 중 하나는 소멸할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먼지보다 작은 그 녀석이 나를 쓰러뜨릴 수도 있다. 제거하지 않으면 내가 해체될 것이다 속에서 녀석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을 잠재울 무기를 입으로 가득 삼키고 가만히 누웠다 낮선 칩입자를 용병으로 싸우게 했다 치열한 전투가 진행중인지 열이 났다 눈을 조용히 감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고요함이 느껴졌다 휴전에 들어간 걸까 혼자서는 복제를 할 수 없는 녀석은 생명체를 찾아다니며 증식을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죽은 상태의 긴 고독을 어떻게 지내왔을까 나와의 우연한 조우로 녀석은 생명이 되고 나는 생명이 꺼질 듯 아프다 용병의 기운이 다하자 녀석들이 다시 ..
그는 늘 혼자다 밥먹는 시간외에는 혼자 침대머리에 앉아있거나 잠을 자거나 빨래를 한다 어떤때에는 혼자 마당에 서 있다가 놀란 고라니처럼 껑충껑충 제자리 뛰기를 하다 자기 방으로 다시 들어 간다 그 많은 시간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시간의 흐름을 의식할까 외로움을 느낄까 뇌속에 저장된 기억은 어떤 것일까 그를 사로잡는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마당에 혼자 있는 그가 눈에 보였다 그도 상큼한 봄냄새를 느꼈는지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에게 다가갔다. 봄빛은 오전인데도 따듯했다 평소보다 경계가 허물어진 눈빛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집마당을 벗어나는 것을 싫어 했던그의 생각을 깨고싶어 젔다 그의 손을 지긋이 잡고 천천히 집앞마당을 벗어나 근처 마을로 가는 소로로 향했다 평소와 달리 거부감이 없었고 자연스럽..
그는 아침부터 빨래를 했다 늘 그렇듯 빨래터는 화장실이었고 세탁기는 변기였다 그의 빨래를 위해 평소에도 변기를 깨긋이 청소해 두어야 했다 세탁은 세제도 필요없이 변기안에 있는 물에 빨래감을 넣어 흔들고 들어올렸다 다시 넣고를 반복하는데 이를 발견한 선생님의 제재가 있은 후에야 끝이난다 세탁기는 빨래를 처리하고 변기는 배설물을 처리하는데 만약 변기가 빨래를 처리하면 변기를 뭐라 다르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 손빨래세탁기로 부르기로 가정한다면 손빨래세탁기는 그에 의해 창조되었다 할것이다 모는 창조는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파괴는 동일화에 대한 파괴다 변기는 인간의 배설물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관념의 파괴다 파괴는 소멸이아니라 이질적인것, 다른것들을 끌어당기며 새로운 생성의 길로 나아간다 이 또한 자연의 엄격한 질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