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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달은 어머니 멍든 젖가슴을 닮았다 흰 속살 위로 깨물린 상처 또렷하다 누군가 매달려 살다간 흔적 한 때 부푼 욕망이었거나 푸른 꿈이었거나 소년을 사랑하던 아버지는 동굴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소년은 아버지의 구두를 매일 닦았다 푸른 물광이 빛날수록 해는 어두워졌다 달이 떠오르면 소년이여 달빛 받는 이, 꽃이 되리니 달빛에 돋아나는 악한 영혼들을 환대해 주렴 달꽃은 희미한 저항의 흔적 속으로 천천히 꽃물들어 마침내 피어나는 꿈
살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고개들어 산을 봅니다 슬프지 않기 위해서 위로받기 위해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 아닙니다 눈물을 더 쏟기위함 입니다 정녕 참지말아야 할 것은 뜨거운 눈물이었습니다 석양에 칠불봉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가야산 일곱부처도 가끔은 울고 싶은가 봅니다 ㅡ참지말아야 할 것은 눈물, 백난작ㅡ
술을 먹는다 마른 오징어는 술안주가 아니다 흐린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눈물은 몇개의 나이테를 더 새길수 있을까 이제 그만 애인을 놓아주기로 하자 그만큼 했으면 됐다 싶다 그도 악어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배변을 하지 못해 배부른 사람들속에 있기는 싫다 나는 튼튼한 장을 가졌기에 노상방뇨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노아의 방주에는 화장실이 있을까 없다면.. 아, 그곳은 신의 집이 아닐 것이다 지구가 돈다고 말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가 돌았다고 말했다 큰 모자를 쓴 사람들은 그에게 교훈을 하며 돌아가는 것을 멈추려고 했다 교훈하느니 차라리 등을 돌리는게 나았는데 그 때문에 다시 지구가 도는데 오랜시간이 낭비되었다 마른오징어를 술안주로 먹는다 뼈대 없는 집안이라도 먹물은 먹을만큼 먹었다 가방끈이 길고 단단해서..
하늘 높은 곳에서 끝닿는 곳으로 추락하는 허공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가는 저 소낙비 서릿발같이 우는데 땅 두드려 깊은 잠 깨우는데 지구가 기우뚱하는데 나는 도무지 흐릿한 안개 스믈스믈 뱀처럼 산허리 감고 하늘에 닿으려 하네 미친게 틀림없어 "참 부끄럽습니다" 하면서 젖은 우산이나 널어 말리고 말간 거울을 닦고 또 거울을 닦고 의미를 쫒다보면 무거워지고 우연한 인생은 덧없겠지 비는 내리는데 풀이 젖어 드는데 개 밥그릇에 식은밥 한 덩이 자빠져 있는데 개는 돌아오지 않고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그린 기린 그림이 아니다 사자라고 하는 이도 있고 사슴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럴때면 나는 기린그림이라고 말하고 다니며 기린을 기다린다 내가 그린 기린은 목이 짧기도 하고 다리가 잘룩하기도 하고 뿔이 나오기도 하고 가끔 날개가 돋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기린그림을 그린다 내가 그린 기린그림이 잘 그린 기린그림이 아니어도 내가 그린 기린그림이니까 잘 그린 기린그림이다 ㅡ백난작, 내가 그린 기린그림 ㅡ
나는 회전교차로가 좋다 중앙에 둥근 섬이 있고 사계절 꽃이 피고 지는 교차로로 접어들면 나비가 어울려 꽃을 맴돌다 뿔뿔이 흩어진다 짧은 만남, 긴 이별 단호한 이별뒤로 어느틈엔가 뒤늦은 나비들이 시냇물처럼 유유희 섞이며 흐른다 신호등은 절벽이다 단절된 길에는 붉은 마왕이 칼들 들고 서있다 다가올 명령만을 기다리는 잘 길들여진 오른발이 주황색불에 질주를 시작한다 ㅡ백난작, 회전교차로와 신호등ㅡ
새소리에 잠을 깼어 새들은 새벽부터 노래를 하지 울음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소리였어 새소리는 진심이니까 알을 깨고도 남아 나의 사랑은 번개불 같았지 그 나머지는 천둥과 비 그리고 긴 슬픔동안 무슨 노래를 한 거지? 무슨 의미같은건 애초에 없었으니까 쓸데없이 잡초를 뽑으려 하지마 대신 네 앞으로 걸어나오는 풍경들에게 환하게 웃어줘 떠나는 사랑에게도 지는 꽃잎에게도 사ㆍ랑ㆍ해 라는 말을 아낄 필요는 없을것 같아 무지개 빛이 다섯 가지건 일곱가지건 중요하지 않아 멀리서도 사랑을 부르면 셀수없는 색깔이 갈라져 나지 너무 가까이 가면 모두 검정이 되니까 팔이 닿지 않는 거리만큼에서 긴 포옹을 하도록 하자 무의미하게 또는 진심으로ᆢ ㅡ무의미하게 또는 진심으로, 백난작 ㅡ
바람이 울고 있었다 비를 다그쳤다 오래된 세상의 작동방식대로 나무는 아랑곳없이 춤을 추었다 전화선이 끊어지고 지지지... ZZZ ᆢ 말들이 달아났다 파랑새가 날아간다 의미를 쫒아가던 단어들이 끝없이 미끄러지고 너를 부르는 소리는 어린 새처럼 죽어간다 원주율, 그 긴 행렬뒤에 숫자로 서서 우주가 되고 싶었다 다시 올 내 차례를 기다리는 영겁의 시간 새가 떠나기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확률속에 있고 싶었다 나는 울고 너는 다그치고 오래된 세상의 작동방식대로 나무는 아랑곳없이 춤을 추었다 온 몸을 적시는 아드레날린이 춤을 춘다 중력이 휘어진다 주사위가 굴러 '5' 에 멈춰선다 새가 날아간다 바람이 울고 있었다 비를 다그쳤다 오래된 세상의 작동방식대로 나무는 아랑곳없이 춤을 추었다 전화선이 끊어지고 지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