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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살가운 사람이 그리운 날이면 사람들 북적대는 시장 통 안 담양 창평국밥집으로 가자 기다려 지치고 곤한 뱃속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뚝배기 가득 고기 반 국물 반 흰 밥 말아 후루루 넘기면 넉넉한 한 세상이 담기는 듯하다 깍두기, 묵은 김치 곁들여 햇양파, 매운 고추, 된장 찍어 먹으면 저마다 다른 몸부림으로 견뎌온 세월 세상살이 지친 가슴들 어느새 땀이 차오른다 기다릴수록 사람들이 몰리는 삶 어깨 부대끼며 더불어 있어 힘이 되는 마음들을 안다 오래 참을수록 게미가 있는 쓰디쓴 절망들, 아픔들, 상처들 넉넉한 국밥에 담아 훈훈하게 녹여내는 사람이 아름다운 풍경 하나 만날 수 있다 ㅡ김완, 창평국밥집1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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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날개가 젤루 무겁고 공룡은 다리가 젤루 무겁고 시인은 펜이 젤루 무겁고 건달은 빈 등이 젤루 무겁다 경이롭잖은가 저마다 가장 무거운 걸 젤루 잘 휘두르니 ㅡ반칠환, 팔자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ㅡ황지우, 겨울산ㅡ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ㅡ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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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바싹 여위었다 아침도 저녁도 아니다 누군가 일월의 벌거벗은 미라들을 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미라의 찬 몸을 두 팔로 안으면 가슴이 뛴다 죽은 몸에서 강물 소리가 들린다 여윈 몸에 커다란 구멍을 가진 나무와 사귄 적이 있다 그의 구멍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면 죽은 별들이 칠흑에 빗금을 그으면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잊어버린 名句 같은 것이 삶이라고 믿은 적이 있다 1월처럼 삶은 덧붙일 어떤 것도 없다 바싹 마른 싸리나무 울타리 문틀도 문도 없이 텅 빈 오두막 찬바람만이 1월을 클로즈업 한다 찬바람만이 죽은 미라들을 깨운다 찬바람을 두 팔 가득 안으면 왜 가슴이 뛰는가 ㅡ이경림, 1월ㅡ [작당이] [오전 9:24] 잊어버린 명구라 카마 이런기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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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켜면 면경의 유리알, 의롱의 나전 어린것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차차 촉심이 서고 불이 제자리를 정하게 되면 불빛은 방안에 그득히 원을 그리고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윤곽 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있다. 들여다보면 한바다의 수심과 같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할 따름이다 ㅡ김춘수, 어둠 ㅡ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ㅡ정현종, 사물의 꿈1ㅡ